도요토미 오사카성의 평판

―아즈치성을 압도! 일본 최강!―
아즈치성 그림 히데요시가 오사카성의 혼마루 건설에 착수하고 얼마 후,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는 오사카성과 성 주변 마을에 대하여 ‘노부나가가 아즈치야마 산에 쌓은 것의 2, 3배나 광대하고 장려’하다는 사람들의 평판을 기록했다. 그 후, 니노마루 건설 중에도 프로이스는 오사카성의 ‘고텐·탑(천수와 망루)·담·응접실·정원, 그밖에 모두’가 오다 노부나가의 아즈치성을 ‘몇 배나 웃돈다’라는 세평을 기록했다.
프로이스에 따르면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아즈치야마 산에 쌓은 것을 모든 면에서 능가하게 하자’라는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일본 제일의 성곽은 아즈치성이었다. 히데요시가 그것을 압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실현한 성과가 오사카성이었던 것이다.
아즈치성의 돌담 오카 야스유키 씨 촬영 히데요시가 죽을 당시의 예수회 기록에서도 오사카성은 ‘일본 전국에서 최대이자 최강의, 실로 당당한 성’이라고 평가받았다. 히라도 영국 상관장인 리차드 콕스는 오사카 겨울 전투를 시작할 때도 ‘일본에서 가장 견고한 것’이라고 오사카성을 표현했다.